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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휴즈의 시를 읽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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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눈밭 구르기... 갈까? (2)
- 2008/02/18
- 2008/02/17
- 2008/02/17
- 2008/02/13
랭스턴 휴즈는 자서전에 자신에게 꿈을 심어준 고등학교 영어선생
에셀 와이머의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바로 그것이야말로 때가 오면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아주 진실되고 아름다운 방법일 수 있다.”
휴즈는 이에 말한다. "나는 '진실되고 아름다운 방법’을 지키기 위해 운명에 대항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싸웠다"
위의 글을 읽을 때 나의 시선은 ' 바로 그것'에 멈춰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때'에 방점을 찍어대고 나를 발견하고 있다. 겨울이 길어서일까?
Hold fast to dreams
For if dreams die
Life is a broken-winged bird
That cannot fly.
Hold fast to dreams
For when dreams go
Life is a barren field
Frozen with snow.
꿈을 꼭 잡으세요
꿈이 사라지면
삶은 날개 부러져서
날지 못하는 새와 같으니
꿈을 잡아요
꿈이 사라지면
삶이란 눈으로 얼어붙은
황량한 들판 같으니.
에셔의 그림그리는 손...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뫼비우스의 띠가 떠올랐습니다 |
2008년 3월 14일,
창작과 나눔으로 즐거운 세상을 꿈꾸는 Creative Commons Korea(이하 CC Korea)의 첫번째 컨퍼런스가 열립니다.
(영문 안내 페이지: the 1st CC Korea International Confernece OPEN CULTURE in CC)
CC Korea가 첫 번째로 준비한 이번 컨퍼런스는 Creative Commons(이하 CC)가 국내에 들어온 후 각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나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얘기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CC Korea 이사장이신 정진섭 교수님의 개회사와 CC의 창립자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의 키노트를 시작으로 학술정보, 공공컨텐츠와 비즈니스, 예술과 미디어로 구성된 4개의 세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4개의 세션은 성격에 맞게 2개의 트랙으로 분리되어 병렬 진행됩니다. 각 세션별로 국내외의 사례와 문제점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도출하고자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 분들을 모셨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트랙을 신청하여 참여해 보세요.
마지막 토론 시간에는 앞서 들은 세션을 토대로 CC에 대한 의미를 정리하며 열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결해야 할 문제, 이를 위해 필요한 프로젝트 등을 도출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각 분야에서 많은 콘텐츠를 다루고 계시거나 Open Culture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CC Korea는 한국의 Open Culture 확산을 위해 항상 여러분과 함께 뛰고 있습니다. 모쪼록 가치있고, 소중한 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컨퍼런스에 대한 궁금증이나 의견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발전적인 의견은 언제나 열렬히 환영합니다. ^^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2.0 방식의 새로운 미디어 출현을 기대하며
1. 미래에 대한 예상과 설정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를 예상하고 설정하는 일은 현재의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일과 곧바로 연결된다. 미래사회에서 발전의 주체가 되기 위한 길을 탐색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화, 그리고 정보의 지적 체계가 유기적으로 생성되는 제3의 물결, 제5의 물결 등에 대한 개념을 제창했다, 또 세계적 경영이론가 피터 드러커는 지식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래학은 단지 가상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SF적 발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연구,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기술의 발전사를 종합적으로 엮어 미래를 내다보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통신, 교통, 정보화 등과 관련해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는 유기적으로 축적되면서 폭발적인 진화를 낳고 있고 이 진화의 주도권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변화가 어떻게 하면 보다 유기적으로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가이다. 이런 흐름에서 국가의 정책을 비롯해 제도 교육, 기존의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경영 모델 등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미래사회의 주도적 창출을 위한 장치로서 미디어는 새로운 존재의의를 갖게 되고 혁신적 기능을 요구받고 있다. 미디어 2.0와 관련된 논의와 그 이론적 정당성도 이같은 인식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2. 지식사회와 창조산업의 개념과 관련해
인류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지식사회가 아니었던 적이 있을까? 또한 산업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창조적인 동력이 요구되지 않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식사회와 창조산업의 개념은 20세기말과 21세기에 들어서서 갑자기 등장한 매우 새롭고 독특하며 독창적인 개념처럼 인식되고 있다.
역사학자 윌리암 맥닐이라든가, 최근 <시간의 지도>이라는 저서를 통해 인류사 전반의 흐름을 정리한 데이빗 크리스찬이 밝히고 있듯이 지식의 유기적 축적은 언제나 인류사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시간적으로 파악해보자면 불의 발견과 활용에 이르기까지 길게는 수 만년, 그리고 철기의 발명와 확산에 수천년, 그리고 이후 문명적 교류가 보다 원활해지는 단계를 통해 수백년의 기간을 거쳐왔다. 이제 오늘날에는 일년 단위 내에서 지식의 유기적 축적과 활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시간의 단축만이 아니다. 지적 기반이 유기적으로 형성되고 교류, 확산되는 거점도 달라져왔다. 하천유역의 촌락이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의 전환기를 감당했고, 이후 도시의 등장은 집단적 지식 체계를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는데 중대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기원전 7천년에서 5천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국가가 이루어지면서 만들어진 고대지식의 체계는 기원전 4백년 경 헬레니즘 시대의 중근동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면 도시에서 국가, 그리고 그 범위를 넘어서서 제국의 단계로까지 확장되어 지식의 거대한 문명적 체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지식사회는 각종 다양한 경험과 이론이 종합적으로 엮어지고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발전논리와 동력을 가진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이에 맞추어 세계는 국제관계의 역사적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서 지식사회와 창조산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식의 산업적 기능과 동력의 가치, 시장에서 창조적 발상이 갖는 가치가 주목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계화와 정보화가 보편적 수준에 도달해가면서 어느 한 국가나 제국의 단위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에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가 산업역량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사회라면, 20세기는 이러한 역량을 기초로 해서 국가적 경쟁이 극단에 이르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규정한 지식이 일방통행적이고 문명을 이해하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다르다. 문명권의 경계를 넘어 쌍방교류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고 있다 또한 이것이 인류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어느 한 특정국가나 제국이 이 모든 것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시대는 점차 사라지고 다수의 대중이 창조적 결합을 하기만 하면 매우 새로운 영역이 개발되고 출현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시장을 주도하는 자본에게 일차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한편 그동안 수동적 소비자로 머물러 있던 대중들 가운데 창조적 역량을 가진 주체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창조적 지식사회를 이끌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담론의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트랜스 휴먼’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자크 아탈리가 지적했듯이 제국이 주도해온 지적 체계의 유기적 관계 형성이 이제는 국가의 경계, 시장의 논리, 자본의 요구에 종속되지 않은 새로운 공적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과 운동에 그 주도권을 넘기려 하고 있는 미래가 오고 있다,
오늘날 여행, 정보통신, 지식을 공유하는 속도가 놀랍게 발전하면서 과거처럼 권위적 지식체계로 군림되거나 독점적으로 지배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국가의 권력이나 자본의 이해만으로는 포섭되지 않은 보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지식의 출현과 결합이 가능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최근엔 지식사회에 대한 개념, 기존의 시장주의적 발상에 기초한 시각에 비판을 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창조산업에 대한 개념도 일정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웹 1.0이 일방적 정보체계의 공급에 그친다면, 웹 2.0은 쌍방교류적 차원이다. 이는 세계적 연결망의 기능과 의미를 바꾸어 놓게 된다. 거대 역사 체계를 구성해온 윌리암 맥닐이 ‘휴먼 웹’의 개념으로 인류문명의 진화를 파악한 것도 이런 논의에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 지식사회의 문명사적 발전과정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연결망을 구축할 것인가, 그로써 서로 교환되는 지식과 정보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지식사회, 창조산업에서 기반이 돼야할 것은 도시나 국가가 아니라 국가권력이나 자본의 이해에 묶이지 않는 창조적 공익인간, 창조적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 휴먼이 주체가 되는 휴먼 웹이 구축되는 현장이다. 곧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그 역할의 중심이다.
3. 인식의 변화
인류는 그 역사 발전 과정에서 전환기에 이를 때마다 철학적 담론의 변화를 경험해왔다. 서구의 경우 신학과 교리가 지배했던 중세에서 이탈하는 과정은 이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고, 자연과학의 등장은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저명한 과학사가 토마스 쿤이 주장했듯이 이른바 인식의 기본얼개가 달라지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패러다임 쉬프트 개념을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하는 과정에 적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20세기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야만과 문명, 평화와 전쟁이 서로 극단적으로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확신과 확신 사이의 충돌, 그리고 이 대립의 와중에 불확실성이 교대로 주도권을 잡기도 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행복을 약속한 사상과 체제가 불행과 비극을 가져오기도 했고, 이성의 도구적 활용이 세계사적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으나 전쟁과 파괴를 낳은 현실은 20세기적 사고와 틀을 새롭게 바꾸게했다. 21세기는 이러한 역사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특정한 확신의 절대화 내지 지배를 경계하고 다양한 관점과 경험, 세계관의 독자성 주체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해하려 한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으로 귀결되지 않고 새로운 이해와 지식의 근거가 되도록 하려는 철학적 관점이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차이”가 “차별” 또는 “적대”로 생각되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인류는 산업발전을 우선하면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연 환경의 생명력이 가지는 소중함, 물질적 발전의 척도를 넘어서는 인간 영성의 의미, 서양문명에 의해 편견과 선입관으로 왜곡되어왔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서구 문명의 진실(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동성애자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 등 비주류적 존재의 권리와 주체성에 대한 각성에 대해 관심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거대한 조직이나 대량생산 내지는 국가단위가 아닌 작은 지역 공동체 또는 소규모 생산과 유통, 작은 가게 등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빠른 것보다 느린 것, 특정문화의 보편적 지배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양식의 종합적 창출을 꾀하는 등 달라진 철학적 지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적 사유는 이제 필연적으로 공정한 대화의 방식과 권리, 다양한 의견교환의 공적 공간 확대, 입장을 바꾸어 현실을 이해하는 교육,문화적 훈련, 지식과 정보, 성찰이 담긴 토론, 분야와 경계를 한정하지 않는 지적 역량 등을 요구한다. 또한 특정 지식이 누군가에게 독점되고 권력이 되는 현실에 저항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과학적 훈련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내용은 바로 이와 같은 21세기적 사유 내지는 철학의 힘을 담아내서 그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적 공간에 가치를 두어야할 것이다
4. 미래사회에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이란?
사회가 단선적 발전경로를 거치게 된다고 봤던 시대에 필요했던 지식과 동력은 하나 또는 두 세 개 정도의 주제에 집중된 발전전략을 꾀해왔다. 우리의 경우에도 산업화라는 주제는 근대화과정의 중심 테마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런 주제는 더 이상 현실에 적용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요구와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이 바라는 미래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 사회의 창조적 대중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능동적으로 새로운 지식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 지식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그 사회의 발전 속도와 그 내용은 풍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지식사회 또는 창조산업의 담론은 자본의 이해를 특화시키는 경향이 높다. 이에 대한 각종 자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본이 지식체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논리를 지원하는 담론들인 것이다. 하지만, 저서 <거대한 변혁>을 통해 자본이 사회의 요구와 이해에 봉사하는 미래를 구상한 칼 폴라니가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이 모든 것을 주도하려 할 때 누락되는 공적 이익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은 더불어 진행된다. 이같은 공적이해의 실현은 거의 모든 영역이 자본의 이해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절실해진다.
인류는 한 특정 논리나 사상, 또는 교리에 일방적으로 지배당하지도 않으며 민주적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기본의식을 갖추어가고 있다. 또한 평생교육적 학습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공익적 공간을 넓혀가려는 요구를 갖고 있다. 공익적 공간이 건강하고 힘있게 존재할 때 인간은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휴먼 웹을 구성하여 진정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소통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 자본이 구축해온 인프라가 인간과 그 사회의 공적 목표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바로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내는 매우 중대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대중은 이미 이같은 미디어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으며, 인류의 발전사가 지향하는 방향도 역시 이와 들어맞는다. 창조적 대중이 주체가 되어 한 사회를 공적 목표에 접근시켜가는 노력이 실현되는 무대, 바로 이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활자의 발명에 이어 정보와 통신의 발전에 이르는 모든 문명의 발전을 하나로 압축시켜 사회의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미래적 선택이다.
어쩌란 말인가? 이미 상상만으로 내 유랑의 심장은 떨려오는 것을~~~
토라자 커피. 이를 내삶에 들여놓은 건 한달 전쯤.
커피스트 조윤정 선생님이 새로 들여온 커피라며 생두를 주셨다. ( 커피스트 블로그를 가보시라 http://blog.naver.com/coffeest )
집에 가서 볶았는데. 그냥 중국음식하는 후라이팬 ( 이거 맞나... 어륀지 인수위 때문에 영어 발음 무지 신경쓰이네...) 에다가 열을 고루 퍼트리기 위해 나무 주걱이 아닌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예전에 깨를 볶듯 부지런히 뒤적뒤적한다....그 결과
내 커피볶는 실력에 비해...맛이 괜찮다. 인도네시아 만델링보다 내 입맛에 맞는구만. 하고 있었는데, 검색하여 토라자에 대해 살펴보니 이미 수준급있는 커피였다. 재료 자체가 토라자 명품이었던 셈.
그 뒤에 조선생님께서 로스팅하신 커피를 마셔보니 가히 훌륭. 난 맛을 그냥 내 멋대로 표현하길 즐겨하는데, 이는 마치 열정이 식지 않은 40대 후반의 남자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거기엔 세상에 대한 시달림 보다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세월의 켜를 통해 쌓여진 나름의 품격이 존재한다. 어쩐지 그 뒷 배경으로는 고급스러운 회색빛이 느껴졌다.
( 여기까지 쓰고서 하루를 보냈다. 그뒤에 자료를 찾으며 나는 나의 입맛에 화들짝 놀랐다. 뒤에서 확인해보시길 )
토라자와 커피
토라자 커피? 이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1999년 세계커피학회에서 4등 선정.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 왕실에서 자랑하던 커피였다고. 맛은 표현하기를 풍부한 향, 달콤한 여운의 쓴맛.
18세기 초,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서 재배되고 있었는데 그 뛰어난 맛과 희소성으로부터 유럽의 왕후 귀족들이 귀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가 토라자의 노래라고 나오는 부분에도 네델란드의 흔적이 있다.
toraja 이걸 네델란드에서는 j를 y로 발음하던데.... 그래서인가 노래에서도
돈똑 돈똑 토라야~. 확인~ 요기로
잠시 노래 한곡 http://batusura.de/indextoraja.htm
커피하면 콜롬비아나 브라질, 이디오피아를 떠올리기 쉽지만 아시아도 그 비중을 만만하게 볼 수 없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이들 국가는 세계 4~5위의 커피 생산량을 자랑한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세계최상급 커피로 인정 받는 수마트라의 만델링, 슐라웨시의 토라자, 자바를 생산하고 있다. 이중 최고가인 토라자는 독특하고 깊은 맛으로 매니어층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 그 산지는 인도네시아·슐라웨시 섬 중부 산악 지대이다.
그럼 인도네시아 어디쯤에 존재하는 곳일까? 초록색으로 표시된 곳의 남쪽이다.
인도네시아는 17508개의 많은 섬으로 이뤄져있다. 주요한 큰섬으로는 수도인 자카르타가 있는 쟈바 섬, 수마트라 섬, 깔리만탄 섬(보르네오), 슐라웨시 섬, 이리안자야(파푸아)섬. 이 가운데 술라웨시 섬은 숨겨진 낙원이라 불린다. 눈앞에 선명하게 다가오는 산들과 놀라운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전통 마을, 독특한 문화가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토라자는 여기서 북서쪽 산악지대에 있다. 토라자의 뜻도 ‘산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 사냥을 다니거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지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토라자족들은 그들의 나라를 '하늘에서 내려온 왕들의 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토라자 커피가 맛있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다. 아라비카 종 커피를 위한 뛰어난 자연 조건 즉 강한 햇볕, 평균 기온20 ~22 ℃, 연간 강수량3,000mm , 밤낮의 큰 온도차. 그리고 화산성 토양.... 바로 여기 화산성 토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커피를 마시며 ‘회색빛’을 떠올린것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아~ 이런
(여기에는 또 남다른 사연이 있다. 내가 스무살 적, 우연히 영월 김삿갓 묘를 찾았을때 나는 그곳에 그냥 반해버렸다. 그 땅의 힘이 어쩐지 편안하게 했다. 나중에 이 주변에 와서 살아야지....했는데, 몇 년사이 관광지로 개발돼 내가 도저히 들어서지 못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난 강원도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 무언가 전생에 인연이 있는게 아닐까? ""아무래도 땅의 기운에 민감한가봐" 했는데...한 친구가 매우 간단명료한 답변을 해줬다.
“ 너 전생에 감자였던 거야~~”
ㅠㅠ
토라자 커피와 일본과의 인연
이야기를 돌려서 다시 토라자로,
그러나 토라자 커피는 흔히 일본에서 재배하는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받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 네델란드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했고 바로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일본의 점령 하에 들어간다. 1945년 독립했지만 혼란스러웠고, 이런 가운데 농원은 황폐해졌고. 커피 재배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 일본의 ‘KEY COFFEE’인지 ‘기무라’커피인지 (자료에 따라 조금 달라서) 일본인에 의해서 발견됐다. 이후 일본인들은 30여년에 걸쳐 농장 개척, 생산처리 기술, 마케팅 등을 완벽히 구비하면서 토라자라는 이름을 자신들만의 브랜드로 상표등록해놓았다.
토라자 커피 이야기는 동영상으로도 제작돼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aqw1Y_pg5V0
토라자의 문화ㅡ장례 의식
토라자. 문화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이들의 종교는 애니미즘적 요소가 강하다고. 원래 인도네시아인의 거의 대부분은 이슬람 교도로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도가 제일 많은 국가다. ( 어떤 자료에 의하면 토라자족은 대부분 기독교도라고 하는데, 이는 직접 확인해봐야할 것 같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서양인들의 출입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알려진 것은 아닐 수 있으니 ) 이들의 문화 가운데 특히 눈여겨 볼것이 장례 의식이다. 토라자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바로 매장하지 않는단다. 시신에 약품처리를 하고 망자가 살아있는 듯이 대한다. 죽은 것이 아니라 아픈 것으로 여기질 뿐이라고. 가족들은 망자를 멋지게 보내기위해 그동안 최대한 정성껏 준비를 한다. 장례식이 고인에게 뭔가 해드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기에 마을 준비가 마쳐지지 않으면 장례식은 계속 연기된다. 몇 주 후, 몇 달 후, 심지어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다. 토라자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례식은 평생을 살아갈 동안 가장 공들이는 의식이다. 장례식은 보통 열흘정도 계속되고, 먹을 거리가 풍성한 축제와 같다
장례식은 들판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은 수 천 명의 조객들이 들판에 모이고 이들은 고인을 위한 많은 제물들도 가지고 오는데, 자손들은 주로 이곳에서 부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물소를 제물로 바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물소를 ㅠㅠ (일년 동안 잡히는 물소들의 소가 평균 6만 마리가 넘는다고)
이는 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망자를 보내는 의식은 공동체에 매우 중심이 되는 행사다. 많은 곳에서 그렇듯 장례식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준다. 왜 우리도 얼굴과 이름도 잊고 지냈던 동창들을 장례식장에서 보지 않던가. 장례식이 끝난 후 물소의 고기는 조객들에게 돌려진다. 그리고 시신은 절벽의 한 묘 안에 안치된다.
토라자 여행
이번 주 이곳의 커피를 공정무역으로 들여오기위해 몇분이 떠나신다고 한다. 조윤정 선생님을 비롯하야...흑흑;;
나는 비록 가지 못하나 토라자의 이것 저것을 돌아보니 내 머릿 속이 마치 깊은 숲을 걷다 나온 듯 맑아졌다. 언젠가 가볼 날이 있겠지. 트레킹을 위해 우선 다리 힘을 길러놔야겠다.
끝으로 알랭 베르디에라는 여행가의 글을 읽으며 토라자로 떠날 꿈을 꾼다.
월간 산에 연재된 글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94&aid=0000000401
참고사이트
http://vaa.anthropology.or.kr/dong/content.aspx?idx=285
http://www.keycoffee.co.jp/e/story/toraja.html
http://www.marubeni.com/worldcity/asia/001694.html
2월 생태탐방 - 점봉산 설피산행 - 설피 신고 야생동물 흔적을 찾아서 - |
꽃에게 안부를 묻는다
일요일 하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다가..오후 4시, 최근 볶은 커피 중 가장 내 입맛을 끌어당긴 인도네시아 토라자 커피를 한잔 들고... 눈을 감고 나만의 여행을 떠난다. 주말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면서 생긴 나만의 버릇, ( 첫사랑 그 사람은 잘 살고 있을까? ..순간 생각이 스쳐가듯.) 그때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마음 속으로 안부를 묻는 것이다. 나란 존재를 먼 곳으로 실어보낸다. 휴~
여기서 그 '아이'란 1999년 강원도 태백산 중턱에서 만난 노란 복수초, 1997년 천마산에서 만난 노루귀, 19